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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폴 민족성 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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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기: 정리 작전과 수용소 (1978~1981) === 1978년 2월 19일 루이나군은 빌베른계 피난민 420여 명이 머물던 베르자 구역의 옛 호텔을 봉쇄한 뒤 포격해 216명 이상을 숨지게 했다. 조작된 첩보를 근거로 한 이 [[다조 빌딩 학살]]은 곧이어 벌어질 대규모 작전의 전조였다. 몇 달 뒤 루이나 본국에서 군정이 들어서자 콘스탄티노폴의 점령 행정도 군정청 콘스탄티노폴 지부가 주도하게 되었다. 1978년부터 1979년까지 벌어진 「정리 작전」에서 군정청은 빌베른계 구역을 차례로 봉쇄하고 16세 이상 남성을 대거 연행했다. 연행자들은 알티노 구금시설을 비롯한 4곳의 수용소에 수용되어 영어와 루이나 시민 교육으로 이루어진 「재교육 과정」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고문과 구타가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정리 작전 기간에만 약 2만 3천 명이 연행되었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1979년 루이나는 자치정부 헌법을 공포해 콘스탄티노폴을 「루이나령 콘스탄티노폴 자치구」로 재편하고 대통령제를 도입했다. 첫 선거에서 혼혈계 정치인 테오도로스 마니아티스가 당선되었으나, 빌베른계 대부분이 선거를 거부해 투표율은 23%에 그쳤다. 자치정부 헌법 제4조는 영어를 자치구의 유일한 공용어로 명시했다. 1980년 루이나 본국에서 [[10.24 시민혁명]]으로 군정이 무너지자, 1981년 2월 루이나 의회는 철수 결의를 가결했고 루이나군은 콘스탄티노폴에서 물러났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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